동창회소개

깊은 전통과 열정이 있는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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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사진

대구의 근대 의학 수용은 서양의학을 습득한 미국선교사들과 일본인 의사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이와 같은 근대 의학의 수용과정에서 경북대학교 병원의 연원이 되는 동인의원이 일본인에 의해서 개설되었다. 대구동인의원은 일제가 조선·만주·중국 등 대륙 침략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국책사업으로 설립한 재단법인 동아동인회의 지원을 받아, 1907년 2월 10일에 개원하였다.

1910년의 한일합방에서 1931년 만주사변의 발발에 이르는 일제치하 전기는 식민지 지배정책이 무단통치를 거쳐 문화정치에 이르는 시기로서, 일제의 의료정책도 이러한 지배정책에 조응하여 추진되었다. 1910년 9월 조선총독부 지방관제를 발표하여, 대구동인의원을 관립 대구자혜의원으로 개편하였다. 자혜의원은 1925년에 경상북도립 대구의원으로 개편되었는데, 운영의 주체가 경상북도로 이관되었을 뿐 자혜의원 단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26년 3월 13일에 발생한 병원 본관 건물의 대화재 이후, 1928년 10월 15일 현재의 경북대학교 병원 위치인 동운정에 새로 도립 대구의원을 신축함으로써 커다란 변모를 겪었다. 당시로서는 최신 건물에 각과 진료실 및 대소 수술실, 병리시험실, 렌트겐실 등 최신 설비까지 갖추어 활발한 진료활동을 벌였다. 무단통치 끝에 3·1운동의 거족적 저항에 부딪힌 일제는 의학교육기관의 설립을 허용하기에 이르렀고, 1923년 7월에 의학강습소가 개설되었는데 이는 후일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의 모태가 되었다. 일제 후기에는 경북대학교병원과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의 역사에서 주목할만한 변화가 일어났다. 도립 대구의원의 시설과 기구 및 의료진의 확충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도립 대구의학강습소가 대구의학전문학교로 승격되었다. 도립 대구의원은 시설이 확대되어 1935년에는 건평 315평의 병실 건물이 신축되었고, 마약류 환자치료소와 산부인과진료실 등 다수의 건물을 갖추었으며, 병원 기구도 내과·외과·안과·산부인과·소아과·이비인후과·피부비뇨기과·치과의 8개 분과로 늘어나 내원 환자수가 년간 10여만명을 상회하였다. 의전 승격 얼마 후인 1933년 11월 27일에는 도립 대구의원의 맞은편 자리에 새로 교사를 신축하여 옮겨갔는데 이것이 현재의 모교 본관건물이다.

1910년 07월 21일 자혜의원 관제 개정(순종칙령제38호)

1945년 8·15광복 이후 사회 전반의 혼란 속에도 대구의과대학은 꾸준한 체제 정비를 거듭하면서 인재 양성과 지역민의 보건 향상에 노력하여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1946년 9월 하순부터 남한 사회에 일어난 좌우분열 속에서 10월 1일 대구폭동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대구의과대학도 이에 휩싸여 약간의 혼란이 없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일부 학생들이 처벌받게 되었고, 일부 교수가 퇴직하게 되었다. 이어서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부속병원이 육군병원으로 변신되었고, 동시에 많은 교수들이 군의관으로 입대하게 되어 학교와 병원의 정상적인 운영이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잔류한 교수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교육활동은 곧 부활하게 되었고, 이어서 일반 환자의 진료활동도 이루어졌다.

한국전쟁을 겪고 난 후에는 폐허를 극복하여 가는 어려운 시기였지만 UNKRA와 CMB 등과 같은 외국 기관의 기자재 원조로 각종 시설이 보충되었다. 1952년 4월 1일에는 도립 대구의과대학 부속병원이 국립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개칭되었다. 이 시기의 병원의 시설은 병동 4개, 실험실 5개, 입원실 92실, 침상수 240 이었고, 진료과목으로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이비인후과, 안과, 피부비뇨기과, 정신신경과, X-선과, 마취과, 임상병리과, 치과 등이 있었다. 당시에 교수 수가 많지 않아 교육과 진료 활동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진료 환자 수는 날로 증가하여 1959년의 경우 외래환자가 81,960명, 입원환자가 48,949명에 달했다. 의과대학의 경우, 국립대학교로의 체제 전환 이후에도 교수 수가 많지 않아 많은 외래 강사를 초빙하였다. 당시 학생수의 정원은 학년 당 80명으로 의예과 160명, 의학과 320명으로 도합 480명이었다. 이후 군사정권이 각종 포고령을 발표하여 의과대학과 부속병원도 여러 면에서 혼란을 거듭하였지만, 그 과정에서도 병원은 날로 발전하여 1962년 6월경에는 1일 180여명의 환자를 진료하는 수준이 되었다. 1960년 이후부터 많은 건물을 신축하여 1974년에는 총 430베드를 가지게 되어 당시에는 한강 이남에서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였다.

1980년대는 1970년대에 시작된 의료진의 각성, 의료시설의 확충, 최신 의료기자재의 도입 등의 변화를 발판으로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시도된 시기였다. 198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많은 교수들이 미국·유럽·일본 등 의료선진국으로 대거 유학을 갔고, 이와 더불어 병원 내 진료제도의 개선과 개혁조치도 있었다. 1982년도의 재활의학과와 의공학과의 신설, 해부병리과의 독립, 방사선과의 진단방사선과와 치료방사선과로의 분리, 내과의 7개 분과로의 분화, 일반외과의 소아외과분과 신설, 치과의 8개 분과 설치 등 의학의 세분화라는 세계적인 추세와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요하는 현대의학의 요구에 대한 부응이 이루어졌다. 뿐만 아니라 1986년 D병동개관, 1987년 대형외래진료동 착공, EXIM차관과 OECF차관에 의한 최신기자재의 지속적인 도입이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하였다. 의과대학에서는 학생 정원의 증가에 따른 교실·실험실 및 연구실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새 교사를 준공하였으며, 기초의학연구소를 설립하여 기초의학분야에 관한 연구 및 의학교육 발전 등에 이바지 하였다. 또한 보건대학원을 1981년 3월 1일 개원하여 지역사회의 발전에 공헌하였다.

1988년에는 국립대학교 병원설치법 시행령이 공포됨에 따라 종래의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이 「경북대학교병원」으로 병원명칭이 개정되었다. 이를 계기로 경북대학교병원의 법인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어 1993년 3월 25일 마침내 법인 경북대학교병원으로 전환되었다. 따라서 법인병원으로서 독립채산제라는 병원 자체의 독자적인 운영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대학병원 본래의 의무인 진료·연구·교육이라는 과제에 대학병원의 역량을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병원의 진료건수 증가와 병원확장 등으로 인한 교수요원 증원이 요구되어 1994년에 임상교수 제도와 1996년 기금교수 제도가 도입되었고, MRI·EBT·CT 등 첨단기기의 도입뿐만 아니라 각종 센터의 설립과 진료지침서의 발간 등이 이루어 졌다.

1988년과 1993년에 의과대학은 본관·신관에 대한 증개축 및 보수를 실시하였고, 시대의 변화에 맞는 교과과정을 만들기 위해 2년에 걸쳐 연구를 지속하여 1998년 10월 24일 '99학년도 의과대학 의학과 교육과정 개편안‘을 마련하였고, 또한 선택임상실습 제도를 실시하여 능동적인 실습이 되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경북대학교병원사 2000년 5월발행